


<계속된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 주현숙│2004│다큐멘터리│73분 | <동행> 김이찬 | 2003 | 다큐멘터리 | 23분 |

계속되는 기록, 끝나지 않은 싸움
글. 섹 알 마문
2003년과 2004년에 제작된 두 편의 다큐멘터리, <동행>과 <계속된다-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를 다시 마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시간은 흘렀지만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입니다. 2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노동환경과 차별, 그리고 산업재해와 죽음의 소식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시절 명동성당 농성 현장에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로서, 그리고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시간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농성장은 단순한 시위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언제 단속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서로를 지키며 버티던 삶의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한 만큼 임금을 받고 싶다는 것, 다쳐도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당시에는 그것조차 요구해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
<동행>은 포천의 가구공장에서 임금체불에 맞서 싸운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특별한 연출보다 현장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기록합니다. 그 기록 속에는 분노도 있고, 연대도 있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거창한 설명보다 사람들의 표정과 침묵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계속된다-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시 이주노동자 운동의 현장을 기록합니다. 명동성당 농성장은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알리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중단과 노동비자 쟁취를 요구하는 농성이 1년넘게 진행되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그곳을 찾아왔고, 언론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그 공간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노동자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는 훨씬 더 많은 이주노동자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도도 일부 개선되었고 사회의 인식도 조금씩 변화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뉴스에서는 폭염 속 농장에서, 건설현장에서, 공장에서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의 소식을 어렵지 않게 접합니다. 임금체불과 열악한 숙소, 위험한 작업환경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타까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비슷한 사고는 반복됩니다.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노동자들이 세상을 떠나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사건이 같은 자리를 대신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멈춰야 할 현실입니다.
저는 영화 <빨대>를 만들면서도 같은 질문을 품었습니다. 20년 전 기록된 현실이 오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영화 속 인물은 허구이지만, 그들이 겪는 차별과 불안, 희망은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삶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영화는 세상을 단숨에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게 만들고, 우리가 외면했던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기억을 남기고, 극영화는 공감을 확장합니다.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 사람을 향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이번 여름, 이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다시 만나는 일은 과거를 돌아보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 묻기 위한 일입니다. 이주노동자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며, 우리의 일상과 산업을 함께 지탱하는 이웃입니다. 그들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존엄 역시 완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언젠가 이런 영화를 다시 만들 필요가 없는 사회가 오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죽음을 기록하지 않아도 되고, 차별과 배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기록해야 하고, 계속 이야기해야 합니다.
<동행>과 <계속된다-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는 과거의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지금도 현재형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지는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2026년 여름, 이 두 편의 영화가 다시 관객을 만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록은 과거를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섹 알 마문
섹 알 마문은 1974년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태어났다. 대학생 시절인 1998년 이주민으로 한국에 왔으며, 2001년부터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이주민 문화예술단체 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섹 알 마문은 개인의 서사를 통해 구조적 현실을 드러내는 연출로 주목받아왔다. 그의 작품들은 이주민의 삶을 단순한 피해 서사가 아닌, 주체적인 존재의 시선으로 담아내며 사회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주요 작품으로는 《파키》(2013), 《굿바이》(2014), 《하루 또 하루》(2016), 《피난》(2016), 《꿈, 떠나다》(2017),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2018), 《세컨드 홈》(2018), 《기다림》(2020), 《빠마》(2021), 《노 웨이 아웃》(2022), 《미호의 여정》(2023), 그리고 장편 극영화 《빨대 / Drained by Dreams》가 있다.
특히 《빨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현재도 영화와 인권운동을 통해 국경과 경계를 넘어선 연대와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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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
주현숙│2004│다큐멘터리│73분
<동행>
김이찬 | 2003 | 다큐멘터리 | 23분
계속되는 기록, 끝나지 않은 싸움
글. 섹 알 마문
2003년과 2004년에 제작된 두 편의 다큐멘터리, <동행>과 <계속된다-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를 다시 마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시간은 흘렀지만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입니다. 2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노동환경과 차별, 그리고 산업재해와 죽음의 소식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시절 명동성당 농성 현장에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로서, 그리고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시간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농성장은 단순한 시위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언제 단속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서로를 지키며 버티던 삶의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한 만큼 임금을 받고 싶다는 것, 다쳐도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당시에는 그것조차 요구해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
<동행>은 포천의 가구공장에서 임금체불에 맞서 싸운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특별한 연출보다 현장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기록합니다. 그 기록 속에는 분노도 있고, 연대도 있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거창한 설명보다 사람들의 표정과 침묵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계속된다-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시 이주노동자 운동의 현장을 기록합니다. 명동성당 농성장은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알리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중단과 노동비자 쟁취를 요구하는 농성이 1년넘게 진행되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그곳을 찾아왔고, 언론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그 공간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노동자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는 훨씬 더 많은 이주노동자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도도 일부 개선되었고 사회의 인식도 조금씩 변화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뉴스에서는 폭염 속 농장에서, 건설현장에서, 공장에서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의 소식을 어렵지 않게 접합니다. 임금체불과 열악한 숙소, 위험한 작업환경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타까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비슷한 사고는 반복됩니다.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노동자들이 세상을 떠나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사건이 같은 자리를 대신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멈춰야 할 현실입니다.
저는 영화 <빨대>를 만들면서도 같은 질문을 품었습니다. 20년 전 기록된 현실이 오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영화 속 인물은 허구이지만, 그들이 겪는 차별과 불안, 희망은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삶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영화는 세상을 단숨에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게 만들고, 우리가 외면했던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기억을 남기고, 극영화는 공감을 확장합니다.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 사람을 향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이번 여름, 이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다시 만나는 일은 과거를 돌아보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 묻기 위한 일입니다. 이주노동자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며, 우리의 일상과 산업을 함께 지탱하는 이웃입니다. 그들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존엄 역시 완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언젠가 이런 영화를 다시 만들 필요가 없는 사회가 오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죽음을 기록하지 않아도 되고, 차별과 배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기록해야 하고, 계속 이야기해야 합니다.
<동행>과 <계속된다-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는 과거의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지금도 현재형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지는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2026년 여름, 이 두 편의 영화가 다시 관객을 만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록은 과거를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섹 알 마문
섹 알 마문은 1974년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태어났다. 대학생 시절인 1998년 이주민으로 한국에 왔으며, 2001년부터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이주민 문화예술단체 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섹 알 마문은 개인의 서사를 통해 구조적 현실을 드러내는 연출로 주목받아왔다. 그의 작품들은 이주민의 삶을 단순한 피해 서사가 아닌, 주체적인 존재의 시선으로 담아내며 사회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주요 작품으로는 《파키》(2013), 《굿바이》(2014), 《하루 또 하루》(2016), 《피난》(2016), 《꿈, 떠나다》(2017),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2018), 《세컨드 홈》(2018), 《기다림》(2020), 《빠마》(2021), 《노 웨이 아웃》(2022), 《미호의 여정》(2023), 그리고 장편 극영화 《빨대 / Drained by Dreams》가 있다.
특히 《빨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현재도 영화와 인권운동을 통해 국경과 경계를 넘어선 연대와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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