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당동 더하기 33> 조은│2020│다큐멘터리│123분
| <사당동 더하기 22 디렉터스 컷: 별동네 이야기> 조은 | 2009 | 다큐멘터리 | 210분
|

우리가 서로를 오역하는 동안에
글. 강하라
시 <크린토피아>가 한 세계로부터 읽혔을 때, 저는 멀미하는 사람처럼 붕 떠 있었습니다. 심사 위원은 그로부터 세탁방 알바생의 핍진성을 보았고, 호주 사는 이모는 엄마의 고된 삶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동네 삼촌들은 해설지를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 엇갈리는 목소리들이 쏟아질 때 실은 조금 걱정했습니다. 세상이 이 시 한 편으로 저라는 사람을 정의 내리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하지만 그 두려움은 이내 양심 고백으로 이어졌습니다. 저 역시 문학이라는 이름표를 쥐고 누군가의 삶을 아는 척, 섣불리 정의해 오지 않았던가 하고요. 그리고 이 거대한 오역의 연쇄 속에서 문득 저는 사랑 역시도 결국 오역으로부터 촉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차피 당신이 저를 멋대로 읽어버릴 거라면, 제 안의 무엇이든 보여줘도 된다는 이상한 용기를 얻었습니다. 제가 이 다큐멘터리를 오역하는 일 역시, 그들을 사랑하는 데 쓰인다면 괜찮겠다는 용기 역시도요.
<사당동 더하기>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제 인생의 기원전부터 기억해 내야만 합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의 기억들, 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억과 그들이 애써 기억하거나 지우기로 선택한 모든 기억까지. 저는 제가 어릴 적 듣고 상상한 이야기들을 스크린 속 인물에게 대입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라는 오만을 한 순간 그들은 예측한 길을 걷다가도 전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마치 우리 할머니처럼요. 홀로 상경해 재봉사로 일했다던 할머니. 공장과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가족처럼 한방에서 살다가, 어느 날 한 친구가 함께 모은 돼지 저금통과 물려받은 금붙이들을 모조리 들고 도망쳐버렸다던 이야기. 하지만 그럼에도 그 친구가 그립다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스크린 속 누군가의 삶과 겹쳐 들렸을 때, 저는 그들과 한참 가까워졌다가도 아득히 멀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자주 할머니를 답답해했습니다. 주식은 무섭다고 겁내면서 전 재산을 곗돈 명목으로 친구에게 쥐여준 할머니. 그 역시 사당동 사람들이었습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아내에게 전 재산을 맡긴 아들 수일, 보험 하나 없는 위태로운 처지인 가족들, 남자 친구를 따라 가출한 은주의 딸까지. 가난의 굴레 속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비합리적인 선택들. 당장 손에 쥐어질 하루치 일당을 위해 기어이 그 눅눅한 웅덩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그럼에도 하루치 연탄을 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정금선 할머니의 목소리가 귀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시력은 제가 아마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감각일지도 모릅니다. 가난이란 건 어쩌면 수만 가지 가능성의 길 중에서 눈앞의 위태로운 외길만 남겨두고 모든 조명을 꺼버리는 암전의 상태일지도 모르니까요.
주님을 위해 이 한 몸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직장 생활과 신학 공부를 병행하던 첫째 손주 영주. 그리고 손주가 쥐여준 얇은 월급을 쪼개어 꼬박꼬박 교회에 십일조를 바치는 정 할머니. 하루도 고단한 몸을 뉠 틈이 없으면서도 두 사람이 움켜쥔 신에 대한 믿음이 슬펐습니다. 엄마의 맹목적인 신앙과 좌절된 기도들이 떠올라서요, 어쩌면 저는 이런 사람들을 대신해 신에게 원망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꿈이 많았죠" 하는 맑은 얼굴을 마주하며, 저는 스크린 밖에서 부디 그 꿈이 무사히 다정한 결말로 이끌 수 있기를 감히 기도했습니다. 좌절될 걸 알면서도.
1998년 스크린 속 아기는, 어쩌면 세상에 막 당도했던 그 시절의 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통과했지만, 수많은 우연과 변수들을 통해 서로 다른 이야기와 서사를 가진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이들의 이야기가 곧 제 이야기라고 말하는 건, 왠지 그들의 가난과 고통, 그 치열한 생의 주인공 자리를 안전한 곳에서 훔쳐 오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저에게 가난의 때를 묻히지 않으려고 애쓴 3대의 노동에 빌붙어, 돈돈돈 하지 않고, 저만의 꿈을 이뤄가는 존재로 자랐습니다. 윗세대가 그 시절의 가난과 한을 크린토피아에서 온 몸으로 열심히 세탁해 빚어낸 결과물이니까요.
"멀리 가야지." 은주의 두 딸이 그네를 타고 허공으로 높이 날아오르며 외치던 소리를 듣습니다. 그 두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는 동안, 저는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기묘한 헤일이 일었습니다. 그 이상함. 그 복잡하고 먹먹한 감각을 지금의 제 언어로는 도무지 정확히 짚어낼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감각이 비로소 저를 일으킵니다. 제 안에서 부유하는 이 정체불명의 마음이 기어코 가장 온전한 문장으로 번역되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씌워놓은 '틀'을 계속해 빗겨나가는 사람들을 묵묵히 지켜봅니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계속 질문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때로는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는 친구가 되었다가도 저 멀리 떨어진 목격자가 됩니다. 펭귄이 죽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카메라의 무력함이 예술의 장애라면, 조은 감독은 '곁에 있겠다'는 섣부른 약속 대신 카메라를 들고 22년, 33년이라는 시간을 정면으로 통과합니다. 한 가족의 생을 예로 두고, 세계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겠다는 증명을 그저 위태롭게 흘러가는 화면들로 빚어낸 것입니다. 그 증명 앞에서 저 역시 제가 할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제가 얄팍하게 오역했던 제 할머니를, 그리고 이 세상의 수많은 얼굴들을 포기하지 않고 오래도록 지켜보는 일을요.
취향이 없다고 구박한 할머니의 젊었을 적 사진을 사진첩 안에서 발굴한 날처럼. 어느 숲에서 한 손으로 보란 듯이 나무를 타던 우리 할머니를, 자전거 핸들을 놓은 채로 높은 언덕에서 내려오는 우리네 할머니들을, “내가 이북에서 넘어와가지고 포주 노릇을 했거든.”, 고백하는 다큐 속 나쁘고 슬픈 할머니들을. 이상하다 못해 괴이하고 못됐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시대의 할머니들을 계속해서 꺼내어 보여주겠다고 말입니다. 사람은, 삶은, 납작한 페이지가 아니라 예고 없이 튀어 오르는 입체 팝업북 같은 것이니까요. 그것이 오역으로 시작된 이 서툰 사랑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을 틀 안에 집어넣어서 미안해, 튀어나올 때마다 다시 들어가라고 해서 미안해, 해명하는 마음으로. 어쨌든 우리는 서로의 오역을 견디면서 그럼에도 곁에 머물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요. <사당동 더하기>가 우리에게 이렇게 증명해 보여주었으니까요.
이 글을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기만 같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너무 가벼운 것 같아서요. 다만 조심스럽게 판단을 유보하려 합니다. 제가 먹고 싶다던 떡볶이가 진짜 저의 욕망인지, 제 꿈이 정말 제 것인지, 영원히 알 수 없겠지요. 저조차 저를 오역하며 사는데, 당신인들 오죽할까요. 그러니 우리, 서로를 안다고 확신하지 말고, 섣불리 규정하지도 말고, 그냥 모르는 채로 곁에 있어 주면 어떨까요. 재개발, 죽음, 너무도 쉽게 지워지는 인생들, 그 속에서 서로를 끈질기게 붙잡는 손길, 이해할 수 없어서 계속 바라보는 시선. 답을 내리지 못해 기어이 곁에 머무는 발걸음. 그 무력하고도 끈질긴 물음표 속에, 어쩌면 우리가 찾던 어떤 답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 저는 오늘 당신이라는 난해한 시집에서 읽다 만 페이지를 접어두고 가만히 앉아 듣겠습니다.
글쓴이. 강하라
202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K-POP 작사·작곡가로 활동하며 동시대의 리듬을 다뤘고, 필름 카메라로 찰나를 수집해왔다. 현재는 낯선 도시들에 머무르는 이방인의 감각을 재료 삼아 글과 사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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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 더하기 33>
조은│2020│다큐멘터리│123분
<사당동 더하기 22 디렉터스 컷: 별동네 이야기>
조은 | 2009 | 다큐멘터리 | 210분
우리가 서로를 오역하는 동안에
글. 강하라
시 <크린토피아>가 한 세계로부터 읽혔을 때, 저는 멀미하는 사람처럼 붕 떠 있었습니다. 심사 위원은 그로부터 세탁방 알바생의 핍진성을 보았고, 호주 사는 이모는 엄마의 고된 삶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동네 삼촌들은 해설지를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 엇갈리는 목소리들이 쏟아질 때 실은 조금 걱정했습니다. 세상이 이 시 한 편으로 저라는 사람을 정의 내리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하지만 그 두려움은 이내 양심 고백으로 이어졌습니다. 저 역시 문학이라는 이름표를 쥐고 누군가의 삶을 아는 척, 섣불리 정의해 오지 않았던가 하고요. 그리고 이 거대한 오역의 연쇄 속에서 문득 저는 사랑 역시도 결국 오역으로부터 촉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차피 당신이 저를 멋대로 읽어버릴 거라면, 제 안의 무엇이든 보여줘도 된다는 이상한 용기를 얻었습니다. 제가 이 다큐멘터리를 오역하는 일 역시, 그들을 사랑하는 데 쓰인다면 괜찮겠다는 용기 역시도요.
<사당동 더하기>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제 인생의 기원전부터 기억해 내야만 합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의 기억들, 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억과 그들이 애써 기억하거나 지우기로 선택한 모든 기억까지. 저는 제가 어릴 적 듣고 상상한 이야기들을 스크린 속 인물에게 대입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라는 오만을 한 순간 그들은 예측한 길을 걷다가도 전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마치 우리 할머니처럼요. 홀로 상경해 재봉사로 일했다던 할머니. 공장과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가족처럼 한방에서 살다가, 어느 날 한 친구가 함께 모은 돼지 저금통과 물려받은 금붙이들을 모조리 들고 도망쳐버렸다던 이야기. 하지만 그럼에도 그 친구가 그립다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스크린 속 누군가의 삶과 겹쳐 들렸을 때, 저는 그들과 한참 가까워졌다가도 아득히 멀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자주 할머니를 답답해했습니다. 주식은 무섭다고 겁내면서 전 재산을 곗돈 명목으로 친구에게 쥐여준 할머니. 그 역시 사당동 사람들이었습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아내에게 전 재산을 맡긴 아들 수일, 보험 하나 없는 위태로운 처지인 가족들, 남자 친구를 따라 가출한 은주의 딸까지. 가난의 굴레 속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비합리적인 선택들. 당장 손에 쥐어질 하루치 일당을 위해 기어이 그 눅눅한 웅덩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그럼에도 하루치 연탄을 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정금선 할머니의 목소리가 귀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시력은 제가 아마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감각일지도 모릅니다. 가난이란 건 어쩌면 수만 가지 가능성의 길 중에서 눈앞의 위태로운 외길만 남겨두고 모든 조명을 꺼버리는 암전의 상태일지도 모르니까요.
주님을 위해 이 한 몸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직장 생활과 신학 공부를 병행하던 첫째 손주 영주. 그리고 손주가 쥐여준 얇은 월급을 쪼개어 꼬박꼬박 교회에 십일조를 바치는 정 할머니. 하루도 고단한 몸을 뉠 틈이 없으면서도 두 사람이 움켜쥔 신에 대한 믿음이 슬펐습니다. 엄마의 맹목적인 신앙과 좌절된 기도들이 떠올라서요, 어쩌면 저는 이런 사람들을 대신해 신에게 원망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꿈이 많았죠" 하는 맑은 얼굴을 마주하며, 저는 스크린 밖에서 부디 그 꿈이 무사히 다정한 결말로 이끌 수 있기를 감히 기도했습니다. 좌절될 걸 알면서도.
1998년 스크린 속 아기는, 어쩌면 세상에 막 당도했던 그 시절의 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통과했지만, 수많은 우연과 변수들을 통해 서로 다른 이야기와 서사를 가진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이들의 이야기가 곧 제 이야기라고 말하는 건, 왠지 그들의 가난과 고통, 그 치열한 생의 주인공 자리를 안전한 곳에서 훔쳐 오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저에게 가난의 때를 묻히지 않으려고 애쓴 3대의 노동에 빌붙어, 돈돈돈 하지 않고, 저만의 꿈을 이뤄가는 존재로 자랐습니다. 윗세대가 그 시절의 가난과 한을 크린토피아에서 온 몸으로 열심히 세탁해 빚어낸 결과물이니까요.
"멀리 가야지." 은주의 두 딸이 그네를 타고 허공으로 높이 날아오르며 외치던 소리를 듣습니다. 그 두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는 동안, 저는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기묘한 헤일이 일었습니다. 그 이상함. 그 복잡하고 먹먹한 감각을 지금의 제 언어로는 도무지 정확히 짚어낼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감각이 비로소 저를 일으킵니다. 제 안에서 부유하는 이 정체불명의 마음이 기어코 가장 온전한 문장으로 번역되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씌워놓은 '틀'을 계속해 빗겨나가는 사람들을 묵묵히 지켜봅니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계속 질문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때로는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는 친구가 되었다가도 저 멀리 떨어진 목격자가 됩니다. 펭귄이 죽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카메라의 무력함이 예술의 장애라면, 조은 감독은 '곁에 있겠다'는 섣부른 약속 대신 카메라를 들고 22년, 33년이라는 시간을 정면으로 통과합니다. 한 가족의 생을 예로 두고, 세계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겠다는 증명을 그저 위태롭게 흘러가는 화면들로 빚어낸 것입니다. 그 증명 앞에서 저 역시 제가 할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제가 얄팍하게 오역했던 제 할머니를, 그리고 이 세상의 수많은 얼굴들을 포기하지 않고 오래도록 지켜보는 일을요.
취향이 없다고 구박한 할머니의 젊었을 적 사진을 사진첩 안에서 발굴한 날처럼. 어느 숲에서 한 손으로 보란 듯이 나무를 타던 우리 할머니를, 자전거 핸들을 놓은 채로 높은 언덕에서 내려오는 우리네 할머니들을, “내가 이북에서 넘어와가지고 포주 노릇을 했거든.”, 고백하는 다큐 속 나쁘고 슬픈 할머니들을. 이상하다 못해 괴이하고 못됐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시대의 할머니들을 계속해서 꺼내어 보여주겠다고 말입니다. 사람은, 삶은, 납작한 페이지가 아니라 예고 없이 튀어 오르는 입체 팝업북 같은 것이니까요. 그것이 오역으로 시작된 이 서툰 사랑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을 틀 안에 집어넣어서 미안해, 튀어나올 때마다 다시 들어가라고 해서 미안해, 해명하는 마음으로. 어쨌든 우리는 서로의 오역을 견디면서 그럼에도 곁에 머물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요. <사당동 더하기>가 우리에게 이렇게 증명해 보여주었으니까요.
이 글을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기만 같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너무 가벼운 것 같아서요. 다만 조심스럽게 판단을 유보하려 합니다. 제가 먹고 싶다던 떡볶이가 진짜 저의 욕망인지, 제 꿈이 정말 제 것인지, 영원히 알 수 없겠지요. 저조차 저를 오역하며 사는데, 당신인들 오죽할까요. 그러니 우리, 서로를 안다고 확신하지 말고, 섣불리 규정하지도 말고, 그냥 모르는 채로 곁에 있어 주면 어떨까요. 재개발, 죽음, 너무도 쉽게 지워지는 인생들, 그 속에서 서로를 끈질기게 붙잡는 손길, 이해할 수 없어서 계속 바라보는 시선. 답을 내리지 못해 기어이 곁에 머무는 발걸음. 그 무력하고도 끈질긴 물음표 속에, 어쩌면 우리가 찾던 어떤 답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 저는 오늘 당신이라는 난해한 시집에서 읽다 만 페이지를 접어두고 가만히 앉아 듣겠습니다.
글쓴이. 강하라
202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K-POP 작사·작곡가로 활동하며 동시대의 리듬을 다뤘고, 필름 카메라로 찰나를 수집해왔다. 현재는 낯선 도시들에 머무르는 이방인의 감각을 재료 삼아 글과 사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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